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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12세기 중국인 서긍의 고려 여행기, 선화봉사 고려도경 1~15권

12세기 중국인 서긍의 고려 여행기, 선화봉사 고려도경 1~15권
  • 저자서긍
  • 출판사e퍼플
  • 출판년2018-09-15
  • 공급사(주)북큐브네트웍스 (2018-11-19)
  • 지원단말기PC/스마트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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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徐兢과 ‘위안 스카이’와 ‘이토 히로부미’







    무슨 까닭에선지, 필자는 熱河日記를 대하는 느낌으로 高麗圖經에 접근했다. 12세기 중국인 徐兢의, 다소 낭만적인 旅程을 상상한 것이다. 그런데 고려도경을 살피면서, 중국인 서긍의 관점이, 조선인 朴趾源의 것과는 전혀 연관을 갖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나아가 서긍의 시선에서, 마치 조선왕조 말기 청나라의 ‘위안 스카이’나, 일제강점기의 ‘이토 히로부미’의 시선이 교차됨은 실로 기괴하였다.

    송나라 사신 서긍의 고려 여행기는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 황제의 명령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고려를 여행할 따름하기 때문이다. 고려도경을 살핀다면, 서긍에게 고려는, 그저 별반 가보고 싶지 않은 여행지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유년시절에 교육받은 대로 상상하는, 국제 지향적 고려의 화려한 先進文化를 견문하는 내용일 것이라는, 상상된 고려도경의 내용과는 전혀 일치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은 현대사회라고 해서 별다르지 않다. 우리는 현대의 대한민국이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어, 세계적인 문명국가가 되었다고 자부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유럽인들은, 한국인들이 未開人처럼 ‘개고기를 먹는다’며 딴지를 건다. 어쨌거나 개고기를 먹으면, 왜 미개인으로 분별되는 것인지, 실로 의문이다.

    나아가 유럽이나 미국의 대다수는, 아예 대한민국을 알지 못하거나, 북한과 뭉뚱그리기도 한다. 어느 시대라도, 서긍의 경우처럼, 부득이 어떤 빌미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强大國의 입장에서 弱小國에 대해 굳이 관심을 가질 까닭이 없다. 이는 人之常情이다. 無法律의 國際政治의 場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弱肉强食의 원리가 작동할 따름이다.



    “현실세계에서, 인간존재는 아무래도, 늘 온갖 사이에만 머문다.

    하늘과 땅 사이, 시작과 끝 사이, 시간과 공간 사이, 신과 악마 사이, 사람과 짐승 사이, 나와 너 사이, 개인과 집단 사이, 아이와 어른 사이, 젊은이와 늙은이 사이, 삶과 죽음 사이, 부자와 가난뱅이 사이,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 존재와 존재자 사이, 의식과 무의식 사이, 이성과 감성 사이, 정상과 비정상 사이, 진실과 거짓 사이, 죄와 벌 사이, 선과 악 사이, 아름다움과 추함 사이, 사랑과 증오 사이, 만남과 이별 사이 등, 온갖 변화와 순환의 사이에만 머문다.

    그래서 결국, ‘사이의 사람[人間]’이다.

    이러한 온갖 사이에서, 나 바깥의 어떤 대상에게 좀 더 많은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수록, 나 자신의 본래적인 의미와 가치는 더욱 감소하며, 상실되어 갈 수밖에 없다는 체험적인 사실은, 아무래도 부득이하게, 현실세계의 온갖 사이에만 세워지게 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절박한 현실 그 자체다.

    그래서인지, 그러한 사실을 좀 더 명확하게 인식할수록, 집단대중은 적어도 시작이 있었다면 반드시 끝이 있어야 한다는 낡은 전제처럼, 온갖 사이에서 부유하는 불안보다는, 어딘가에 소속되는 안정 속에 머물고 싶어 한다.

    집단대중의 이러한 안정 지향을, 너무도 잘 파악하고 있는 그림자권력은, 어느 집단공동체에도 당최 소속되지 않으려고 하거나, 도무지 소속될 수 없는 채로 온갖 사이만을 떠돌며, 다만 예술가적인 자기만족과 자기완성의 일탈과 탈주를 모색하는 자라면, 대체로 反집단적인 이방인이나 방랑자인 것으로 판정하고서, 미래의 생존을 빌미로 지속적인 소외와 제거를 명령한다.

    부득이했지만, 출생 이후 지속적인 훈육으로써, 이러한 명령에 이미 충분히 길들여진 탓에, 집단대중은 더욱 사이의 시공간은 아무래도 잠시 떠도는 곳이지, 결코 오래 머물만한 곳은 되지 못 한다는 판단을, 스스로 맹신하게 된다. 하지만 결국 인간은, 온갖 사이에서, 떠돎의 삶으로부터 되돎의 죽음으로 나아가는 존재일 따름이다.

    그런데 현실세계의 그러한 떠돎과 되돎의 뒤엉킴 속에서, 인간존재의 유한한 일회성의 삶과 죽음보다도 오래도록, 온갖 사이에만 머무르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눈과 빛’ 사이에서 생성되는 그림이다.”(탁양현: 단편소설 ‘여행담’)



    온갖 사이[間]를 떠도는 자로서 여행자는, 늘 마지막 到着地를 豫備하며 당최 마감될 것 같지 않은 여행을 지속한다. 물론 죽음이라는 마지막 도착지는, 이미 예정되어 있다. 그런데 실상 죽음이라는 현상 자체는 실재하지 않는다. 그저 출생 이후, ‘삶과 죽음’ 사이에서의 ‘나’가 체험될 수 있을 따름이다.

    현대사회는 과거에 비해 너무도 풍족한 시대이다. 혹자는 ‘Hell朝鮮’을 외치지만, 과연 대한민국이 그렇게 地獄과 같은 상태에 있는지 의문이다. 필자는 ‘헬조선’의 상태를 체험하지 않은 세대이다. 그래서 兩班士大夫, 奴婢, 일본순사, 부산 피난민, 라이 따이한, 보릿고개 등의 개념들은, 그저 역사 속의 片鱗으로서 인식될 따름이다.

    기껏 필자의 실제적 기억을 소급해봐야, 새마을운동 쯤이 아련한 기억으로 무의식 저편에 배치되어 있다. 어쨌거나 필자는 군부독재에 대한 민주화운동이 결실을 맺을 즈음의 기억이 선명한, 그야말로 現代人이다. 그런 필자가 어떤 계기에서 저 먼 古代로부터의 여행을 시작하게 된 것인지, 이제는 명료히 分別되지 않는다.

    이미 적잖은 삶의 여정을 걸어왔고, 이제 죽음이라는 終着地가 그다지 멀지 않은 상태이다. 한때 필자는 실제적인 여행자가 되어, 동아시아 이곳저곳을 10여 년 넘도록 표류하듯 헤매돌던 시절이 있다. 이제 그런 시절도 기억 저편으로 잠겨버렸다. 물론 별다른 의미는 있지 않으며, 다만 그저 그러하다는 이야기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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