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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광화문역에는 좀비가 산다

광화문역에는 좀비가 산다
  • 저자이봉호
  • 출판사스틱
  • 출판년2018-11-28
  • 공급사(주)북큐브네트웍스 (2019-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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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 좀비를 만나다…

    직장좀비로 살 것인가? 부활해 나를 찾을 것인가?



    ★ 모든 인간이 좀비로 변하는 현대사회의 초상과 공포

    ★ 각종 좀비로부터 탈출하는 법

    ★ 숨만 쉬고 있을 뿐 그대들은 이미 좀비다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이 사이좋게 사는 마을, 서울 광화문광장. 근처 지하철 입구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로 거리는 분주하다. 마치 비 오기 전 개미들의 부산한 행렬을 연상케 한다. 핏기없는 굳은 얼굴에 어두 칙칙한 정장차림을 한 검은 무리와 배기가스를 내뿜는 자동차가 광화문역 사거리를 가득 메운다. 영혼 없는 그들의 모습은 가볍지만은 않은 듯 무언가에 이끌려 아침행렬에 동참한다. 사각 시멘트 모양을 한 건물은 굶주린 듯 그들을 속속들이 집어삼킨다. TV 속 화면으로 본다면 광화문역 사거리의 아침풍경은 영락없는 좀비들로 가득 찬 세상이다.



    ‘좀비’는 문화 콘텐츠 소재로 인기가 급상승한 캐릭터 중 하나다. 원래, 인간에게서 영혼을 뽑아낸 존재로 ‘부활한 시체, 살아있는 시체’를 말한다. 부두교에서 유래한 좀비는 노동력을 충당하기 위해 시체를 좀비로 만들었다. 영혼이 없기에 명령에 절대복종하고, 임금을 지급할 필요도 없고 먹을 것을 줄 필요도 없다. 그러므로 노예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현대에는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비실거리며 다니는 사람’ 혹은 ‘무사안일에 빠져 주체성을 지니지 못한 채 로봇처럼 행동하는 사람’을 말한다. 늘 뒷전에만 서 있고 겉멋에만 치중하며 시키지 않으면 어떤 일도 능동적으로 하지 않는 게으른 직장인들, 피로에 지쳐 같은 일을 반복하며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직장인들을 소위 ‘좀비족’이라고 빗대서 부르기도 한다.



    노예좀비들은 돈이 만들어낸 부가가치에만 온갖 열정을 쏟아붓는다. 자본주의의 첨병에 서서 사람들의 관능을 자극하고, 오직 물질의 풍요로움을 선동하여 그들의 지갑을 열게 한다. 하지만 정작 자기 삶을 스스로 선택하지도 결정하지도 못하는 무기력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매일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하는 일상을 보내면서 불확실한 미래의 불안함과 삭막한 무한경쟁시대에 오직 성공만 위해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무작정 달려간다. 그들은 지치고 힘든 현대인들의 자화상이다.



    그대, 정말 지치고 삶이 힘겹다면? 지금이 바로 인생의 궤적을 다시 살펴보고, 삶을 되돌아볼 시기다. 우리는 모두 자유롭고 행복하기를 누구보다 꿈꾼다. 보다 가치 있는 삶을 살면서 말이다. 하지만 삶은 우리의 꿈을 저당 잡은 채 머리와 가슴은 텅 비게 하고, 권력과 탐욕만을 좇게 이끈다. 우리는 왜 지치고 힘들어하는지 그 진짜 이유와 원인을 찾아야만 한다. 방치한다면 영혼 없는 좀비의 삶을 살게 될 수밖에 없다. 좀비란 괴물의 존재를 낱낱이 밝혀야 하는 이유다. 문화중독자는 말한다. “무의식중에 정신과 육체, 우리의 미래를 갉아 먹는 탈진의 진짜 정체에 대해서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래야 인간답게 살 수 있고, 원하는 미래를 형상화할 수 있다.”라고. 나를 구속하고 망가지게 하는 조종자가 누구인지, 노동의 노예로 만드는 자가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멀쩡한 사람을 무뇌아로 변신시키는 자본과 미디어의 마력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21세기를 상징하는 자본과 미디어는 느리지만 절대 멈추지 않은 채 갖가지 방법으로 사회를 잠식하고 이곳저곳 이리떼처럼 몰려갈 것이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 웅크린 탈진이란 괴물은 점점 더 교묘하고 영악하게 우리 자신을 지배할 것이다. 하지만 문화중독자는 “누구나 영혼 없는 좀비들이 가득한 탈진사회에서 쉽게 벗어날 수도 있다.”라고 조언한다. 단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를 지치게 하는 탈진의 정체를 파악한 후, 그것에 ‘대응할 힘과 용기’를 길러야 한다고 말한다. 의지가 약해지는 순간, 포기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다시 벌떡 일어서야만 한다.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버텨낼 수 있는 힘’이다.





    탈진사회의 민낯

    대한민국의 현주소는 탈진사회 1번지



    대한민국의 현주소는 탈진사회 1번지. 주위에 좀비의 눈동자를 한 이들이 우두커니 무리지어 있다. 이들은 사회라는 링에서 쓰러지는 그날까지 한 곳만 바라보며 단 하나의 가치만을 추구하는 직장형 좀비의 삶을 살고 있다. 복제된 기계처럼 살며 서서히 탈진하는 그들의 모습은 핏기라고는 전혀 없는 전형적인 좀비의 얼굴이다. 하나같이 즐거움이나 행복과는 거리가 먼 21세기형 좀비다. 광화문뿐 아니라 대한민국 어디를 가든 쉽게 만날 수 있는 좀비만이 가득한 세상, 이곳은 탈진사회다.

    다양한 좀비들로 이루어진 시스템사회는 인간도 사회도 좀비바이러스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감염되어 있다. 바퀴벌레보다 더 강한 생명력을 가진 좀비는 비감염자를 감염시켜 자기를 복제한다. 자기 흔적을 새기면서 모든 것을 다 먹어 삼키고, 모든 것에 달라붙는다. 살아있는 것을 공격해 죽이는 것은 기본이고 결국 그들마저 영혼 없는 좀비로 만든다. 당혹스러운 건 이 모든 행위에 특별한 이유가 없다. 어떤 이유도 없이 사람들을 감염시키고 그들을 동료괴물로 만든다. 감염의 경로도 발병원인도 모르는 이 정체불명의 전염병. 모든 인간을 좀비로 만드는 현대사회에 대한 무의식적 공포의 징후가 곳곳에서 드리워지고 있다.

    소비만 부추기는 쓰레기 광고부터 유해성분이 가득한 미디어, 미디어 쓰나미 속에 침몰해 가는 인간관계, 빈익빈 부익부로 치닫는 경쟁제일주의 사회, 1등 지상주의에 빠진 학교, 창의력과 꿈보다 취업·취직을 우선시하는 교육, 자본의 첨병을 자처한 대학, 정치권 인사의 탐욕, 성공이란 가면을 쓴 위인양성 시스템, 경쟁력이란 핑계로 선봉에 선 성형중독, 차별성 없이 비슷비슷하게 복제된 삶, 언제나 사람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신자유주의 시스템과 이것이 파생시킨 임시직이라는 불안정한 직장, 쪼들리는 월급, 좀비양성소로서의 역할로 자리매김한 영혼이 부재한 기업 등은 현대판 좀비들이 가득한 탈진사회 세상을 건설하는데 일조한 대표적 해악들이다. 우리가 진정 바라는 근원적인 모습과 행복, 꿈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책은 사회에 무지막지한 민폐를 끼치는 ‘좀비들이 가득한 탈진사회의 민낯’을 낱낱이 들여다보고 있다. 부와 물질만 좇다가 자본주의와 시스템에 영혼 대부분이 탈진된 채 현대를 힘없이 살아가는 우리의 씁쓸한 초상이자 자화상이다. 모든 인간이 좀비로 변하는 현대사회의 좀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탈출팁, 탈진사회를 구성하는 악성인자, 막연히 상상하던 탈진의 진짜 정체 및 그 해악에 관해 하나하나 파헤친다. 탈진사회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가장 쉬운 방법은 탈진사회의 원인과 정체를 확실히 알고, 탈진을 요구하는 사회구조와 ‘탈진의 역사적 현실’을 들여다보는 힘을 기르는 것. 탈진은 노동에너지를 담보로 하기에 감추려 했던 ‘탈진의 역사’를 끄집어내면 탈진을 부추기는 사회의 심장부로 다가갈 수 있다.

    유행처럼 번진 ‘위인’ 시스템의 주인공 스티브 잡스부터 남자들의 삶과 사회의 뒷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록키’ 이야기, 우리를 둘러싼 사회의 축소판인 시시포스 신화 이야기, ‘모던 타임즈’에서 찰리 채플린이 하고자 한 말, 창조경제 신드롬과 허상, 줄 세우기 문화의 일등공신 숫자중독, 1등만 강요하며 숫자놀음의 노예로 사는 한국사회, 1% 자본가들만이 대접받고 인정받는 비딱해진 자본주의 시스템, 계급사회의 빛과 그림자, 군대·정부·국가·학교에서 양성하는 복제인간, 자본 앞에서 항문을 벌리는 대학,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괴물이 된 미디어의 본색, 멈출 줄 모르는 오늘날의 전자세계, 광신적인 소비현상 등의 이야기까지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할 만큼 솔깃한 이야깃거리로 가득하다. 지금 이 순간도 세상은 더욱더 교묘하고 영악하게 우리의 삶과 영혼을 지배하려고 애쓰고 있다.

    현대 도시생활의 반복일상으로 무기력하고 무감각한 삶을 살고 있다면? 돈과 권력의 노예가 돼 정체성을 상실한 채 자본주의와 시스템에 영혼 대부분이 ‘탈진’되었다면?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갈구하고 탐색하고자 한다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직장좀비, 취업준비, 스펙좀비, 성형좀비, 학점좀비, 정치좀비, 전월세좀비, 엄마좀비, 아빠좀비, 자식좀비, 할부좀비, 노후좀비, 건강좀비 등 인간세계의 오류로 파생된 다양한 ‘좀비들의 삶’. 이곳으로부터의 탈출 프로젝트가 다각도로 담겨 있다.





    광화문 좀비의 추억!

    나는 가끔 좀비로 변신한다



    “광화문은 내게 특별한 장소이자 추억의 공간이다. 국제극장에서 아버지와 성룡이 주연한 〈사형도수〉를 보면서 멋지다 못해 감동했다. 사무실과 번드르르한 술집들이 자리 잡은 어른들의 세계로 추락하면서 광화문은 내게 낯선 공간이자 거부하고 싶은 현실이 되었다. 대성학원에서 재수하고, 대학에 입학하면서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사한 문화공간으로 LP 껍데기를 만지작거리면서 행복해했다. 돈을 벌고, 연애를 하고, 연락이 끊어졌던 친구를 만나고, 야근의 고통에 시달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과 일해야 했고, 아침저녁으로 똑같은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려야 했다. 덕수궁 앞 시위하는 이들을 무거운 마음으로 훔쳐보고, 월드컵 4강 신화에 환호하는 붉은 응원 열기를 목격했으며, 자살한 대통령의 추모인파에 휩싸여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나는 아직도 광화문에서 일하고 있다. 그곳은 주요 신문사가 모인 정보의 장이며, 회사와 샐러리맨들이 득실거리는 일터이며, 외국관광객들이 모여드는 장소이며, 가끔은 촛불시위가 벌어지는 성소이며,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이 사이좋게 사는 마을이다. 나는 그곳에서 가끔은, 아니 자주 좀비로 변신한다. 날씨가 어두워지면 광화문 거리에는 술 취한 좀비와 배고픈 좀비, 일에 찌든 좀비, 방황하는 좀비들이 이리저리 서성거린다. 그들은 인간이었던 시절을 그리워하기도 하며, 다시 인간으로 돌아가기 위해 엉거주춤한 자세로 준비운동을 하기도 한다. 어떤 좀비는 영원히 좀비의 삶을 살기도 하고, 어떤 좀비는 완전한 인간으로 돌아오기도 하며, 또 어떤 좀비는 인간에서 좀비 사이를 오락가락한다.” _저자 이봉호





    추천사

    모두가 한곳을 바라보는 삶은 지루하다



    _홍대 카페 〈코케인〉 대표 최우석

    나는 홍대에서 조그만 음악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손님은 그럭저럭, 매상은 소소하다. 나는 자영업자다. 가끔은 계속 카페를 운영하는 것이 존재 이유인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것은 매일 듣는 음악을 아무 이유 없이 다시 듣게 되는 이유와도 비슷하다.

    가게를 시작하기 전 십수 년 동안, 나는 자본주의의 첨병에 서서 사람들의 관능을 자극하고, 물질의 풍요를 선동하여 그들의 지갑을 열게 하는 일을 해왔다. 영혼은 오래된 교양서적 속에 묻어두고 오직 돈이 만들어내는 부가가치에만 열정을 쏟았으며, 그것이 만들어낸 세계 속에서 나의 계급과 위상을 자리매김해왔다. 물신숭배의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그 밑에서 글을 써서 밥을 먹고 살았으며, 마케팅이라는 이름으로 펼쳐진 얄팍한 글쓰기는 수많은 이를 현혹하며 아주 쉽게 나를 자본주의에 안착시켰다. 마르지 않는 샘처럼 끊임없이 쏟아질 것 같은 아이디어와 상상력이 점점 그 밑바닥을 드러낼 즈음, 나는 수시로 거울을 바라보게 되었다. 나의 삶은 온전한 텍스트인가, 그 텍스트에는 영혼이 첨부되어 있는가, 라는 질문이 늘 거울 속에서 수증기처럼 피어올랐다. 그것은 일종의 부름이었고, 존재증명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과도 같은 것이었다. 문화중독자 이봉호의 책에 대한 추천사를 감히 쓸 수 있게 된 배경에는 그와 나의 삶에 대한 모색이 그리 다르지 않다는 공감에서 시작된다.

    그의 문화와 예술에 대한 고독한 탐색과정은 내가 오래전 자본주의와 시스템에 영혼 대부분이 ‘탈진’되어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갈구하고 탐색해온 지향점과 별반 다르지 않다. 미디어와 문명의 이기에 종속되어 꿈과 이상은 데이터와 정보에 매몰되고, 틀에 박힌 관성과 제도가 물리적 행동양식을 강제하며, 하루하루를 도시의 그늘에서 스타벅스의 커피 한 잔에 위안을 받는 현대인들이여.



    그대들은 지금 무엇을 꿈꾸고, 그대들의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 삶의 양식이 화폐로 환원되는 그곳에서 그대들의 영혼을 적셔주는 음악은 어디에서 울리는가.

    모두 한곳을 바라보는 삶이 얼마나 지루한지를,

    모두가 하나의 가치를 추구하는 일이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이제 그대들은 자신에게 질문을 던질 때가 왔다.

    그리고 문화중독자 이봉호의 글이 당신과 비슷한 마음으로

    그 질문에 애정이 어린 답변을 해줄 것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같은 곳을 바라보면서 근원적인 행복을 향해 달려가는 삶의 마라토너이자 문화중독자인 저자에게 박수를 보내며 나 같은 강호의 무명 소졸에게 그 옆의 한자리를 기꺼이 내준 것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이 추천사로 갈음한다.





    본문 중에서



    가수 싸이는 공연을 마친 후 완전히 탈진상태가 되어 금세라도 쓰러질 것 같지 않으면 자신에게 몹시 화가 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탈진상태란 기분 좋은 탈진이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무겁고 부담스러운 탈진의 기류만이 가득하다. 누구의 탓이기를 말하기에 앞서 그 원인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지 않을까? (제2장, 25쪽)



    ‘탈진사회의 초상’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들이 위인이라는 가면을 쓴 채 미디어를 지배하는 세상이라는 점을 잊지 말자. 진정한 위인은 텔레비전이나 언론매체에 자주 등장하는 이들이 아닌, 우리 주위에서 살고 있는 따뜻한 심장의 소유자들이다. 위인들은 늘 우리 가까이에서 호흡하고 있다. 우리는 멀리 보이는 위인이 아닌, 가까운 이웃에서 사는 위인을 발견할 수 있는 시선을 갖추어야 한다. (제3장, 39쪽)



    영화 〈록키〉의 사생활은 승자의 역사가 아닌, 탈진사회 속에서 패자로 살아가야만 하는 이웃들의 삶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남들과 다른 삶을 꿈꾸는가? 그렇다면 남들과 다른 시각을 가져야 한다. 그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탈진사회를 힘차게 뚫고 나올 수 있는 용기와 영민함을 얻을 수 있다. (제4장, 47쪽)



    학교라는 조직에서만 순위매기기가 존재하지 않는다. 스포츠계에서도 순위매기기 경쟁은 존재한다.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던 이상화(스피드 스케이팅 500m)는 수상 인터뷰에서 ‘메달의 색깔 여부와 관계없이 기뻐하는 외국선수들이 부러웠다.’라고 토로했다. (제5장, 52쪽)



    세상은 지금 섭씨 39도다. 신자유주의 전성시대, 갑을 문화, 땅콩회항 사태, 세월호 사건, 비정규직 문제, 미디어 중독, 자본세력에 포위된 교육, 소비만이 미덕인 사회구조, 1분이면 흡입 가능한 쓰레기 음식들의 난립. 우리는 스스로 만든 바벨탑 속에 갇혀 있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이라는 한탄이 절로 나온다. 정말이지 그 시절에는 지금은 누릴 수 없는 행복이 존재했을까. 사람은 비교하는 동물이다. 비교의 대상이 미래에 존재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점수를 매기지 않는다. 비교의 대상은 늘 과거에 머물 뿐이다. (봉 박사의 잔소리, 114쪽)



    세상은 변화를 추구하는 이들과 사회에서 정해준 틀 안에서만 호흡하려는 이들과 갈등과 투쟁의 장이다. 어느 편에 서야 할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확실한 것은 탈진사회로 가는 지름길이 후자라는 사실이다. 편하고 쉬운 선택은 그만큼의 대가가 따른다. 책상 위에 서서 변화를 추구하는 이들은 평생토록 사회적 차별과 편견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들이 추구하는 삶은 좌절의 연속이지만 때때로 성취의 즐거움이 존재한다. 복제화된 인간으로 살아가려는 이들은 결국 자신이 만들어낸 틀 속에 다시 갇힐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들어 지금까지 자신이 걸어온 길을 후회한다 해도 소용없다. 이미 그들은 복제인간으로 완성되어 뇌와 심장의 기능이 차갑게 굳어버렸기 때문이다. (제10장, 129쪽)



    자신의 일상에 저항하면서 세상에 온몸으로 부딪치는 주인공을 묘사한 소설 『젊은 날의 초상』에 등장하는 시대적 상황 또한 추가해야 할 것이다. 민주화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던 수많은 한국의 대학생들을 기억하는가? 만일 그들이 없었다면? 파시즘의 유령이 지배했던 1970~1980년대의 정치적 그늘이 사라진 21세기의 대학가에는 개인주의를 표방한 이기주의와 변질한 자유만이 넘실댄다.

    토론문화도,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사제간의 애틋한 정도 찾을 수 없는, 마치 기업시스템과 다를 바 없는 일종의 비즈니스 모델이 되어 버린 대학의 슬픈 초상. 도대체 무엇이 대학의 풍경을 사막처럼 변화시킨 것일까? 대학은 발전하고 있는가? 아니면 퇴보를 거듭하고 있는가? (제11장, 135쪽)



    당신은 행복한가? 당신의 행복은 미디어매체의 영향을 전제로 한 것인가? 당신이 스마트폰에 원하는 단어를 입력하고 검색하는 순간, 실시간으로 엄청난 정보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런 정보들이 당신의 삶을 윤택하고 평안하게 만들어 준다고 믿는가? 당신의 사고는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점점더 깊어지고 넓어지고 있는가? 미디어매체로 인해 당신은 과거보다 더 인간적이 되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제13장, 169쪽)



    마치 닭장 속에 갇힌 폐사 일보 직전의 닭처럼 탈진사회에서는 일회용 인간들을 교육하고, 감시하고, 처벌하고, 유혹하고, 협박한다. 탈진사회의 전방위적인 공격에서 정신, 육체적으로 완벽하게 자유로운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탈진사회에서 강조하는 소유의 개념에도 분명히 약점은 있다. (제17장, 222쪽)



    어느 날 깨어 보니 당신은 탈진사회라는 커다란 감옥에 갇혀 있다. 당신과 함께 숙식하고 남은 형기를 채워야만 하는 동료죄수마저도 자신이 탈진사회에 갇혔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남은 형기를 동료들과 함께 아무 생각도, 자각도 없이 보내야 할 것인가?

    당신은 이미 탈진사회를 벗어날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당신이 움켜쥔 열쇠를 넣을 수 있는 구멍을 찾는 일이다. 절반의 시작에서 주저하지 말자. 여기서 포기하면 당신은 다시 탈진사회라는 악령의 마을에 거주하는, 그렇고 그런 사람으로 전락할 것이다. (제18장, 229쪽)



    피구게임이 말하는 승자의 규칙은 중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치면서 사람들의 삶 속에 각설탕처럼 스며든다. 불편한 현실이지만 우리는 학교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운다. 우리가 성장하면서 조금씩 학습하는 사회라는 집단무의식 체제는 승자독식의 룰을 철저하게 따른다.

    목소리가 크든가, 주먹이 세든가, 아니면 돈이 많든가, 그것도 아니라면 거짓말이라도 잘해야 버틴다. 물론 교과서에 그렇게 쓰여 있지는 않다. 인정하기 싫지만, 사회는 일등만을 기억하는 거대한 재활용센터가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교과서나 전공서적에 나와 있지 않은 사회의 법칙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배운다. (봉 박사의 잔소리, 2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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