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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조물주위에건물주

조물주위에건물주
  • 저자신창용
  • 출판사스틱
  • 출판년2018-11-27
  • 공급사(주)북큐브네트웍스 (2019-01-04)
  • 지원단말기PC/스마트기기
  • 듣기기능 TTS 지원(모바일에서만 이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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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의 상태성을 갈기갈기 진단한다!

    사회적 사유(思惟)나 담론(談論)으로 가득한 뒤틀림이 있는 책



    권력, 정치, 경제 등에 관한 사고나 발상은 워낙 도발적이고 광범위하다. 이 책은 크고 난해한 사회적·국가적 문제나 이슈에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 그 실질이 바로 대한민국 현재가 가진 문제들의 틀이다. 자본과 자본에 길든 널리 시민의식, 근본모순의 재벌, 개혁 저지세력으로 널리 공조직 등에 대한 문제제기에는 바로 ‘99%을’의 삶을 어찌할 것인가에 걸려있다. 폭력의 편재(遍在)로부터 ‘99%의 을들’이 자유로울 것임에 대해 그 가능성과 절망에 대해 냉정히 점검한다.





    ‘99%을’에게 바치는 진군가

    《탈출, 99%을》의 후기만을 그대로 옮겨 출간한 특별한 책!



    책은 세상을 지배하는 영역인 정치·권력·경제의 세계에 눈을 치켜뜨고 있다. 자본권력과 ‘1%갑’의 폭력, 그리고 민심의 권태와 법의 타락, 선한 정부의 무능과 언론의 동조, 그리고 만인의 폭력에 의해 욕망의 화신이 된 자본가들과 현대인들. 이 책은 예민한 현실의 정치와 권력, 경제에 천착한다.

    “돈과 거짓 신화의 악마는 정치적 무관심이나 외면이 일상화된 사회를 탐한다. 정치에 관한 무관심이나 외면이 팽배한 곳은, 바로 재벌과 ‘1%갑’이 ‘99%을’을 현혹하고 다스리기 딱 좋은 환경이다.”

    경제와 함께 정치가 규정하는 큰 틀은 ‘1%갑 : 99%을’의 삶을 규정하거나 구속한다. 책은 ‘갑들’의 리그에 대한 응징에 앞서 ‘99%을들’의 희망과 나아갈 방향에 초점을 맞췄다. 사회구조적 종속관계에 걸린 ‘을(乙)들’의 서사와 이 땅을 지배하는 것들에 대한 단상들이 냉철한 논조로 펼쳐진다. 정치에 관한 무관심·외면, 재벌지배자, 권력자 팟캐스트, 일자리·일거리, 비정규직·영세자영업, 기회·결과의 평등, 사회안전망, 세월호, 미투운동, 촛불혁명, 김광석, 선거, 남북, 미국, 1가구1주택·감면, 헌법, 법언까지 한국에서 큰 이슈가 되었던 정치·경제·사회 주제를 재료로 소환했다.



    ? 문화적 사유·담론에 대한 문장들의 향연, 작금의 현주소를 뒤틀어본다!

    책은 사회적·국가적 사유(思惟)나 담론(談論)으로 가득하다. 대한민국의 상태성에 대한 것으로 거의 전부 다 밑줄 칠 수도 있을 정도로 알차다. 법치국가임에도 법의 손이 미치지 않거나 법을 외면하는 국가·사회를 지배하는 사회적 에너지의 문제, 1가구1주택의 면세문제 및 소유권제도 그 자체에 관한 관점에서 읽는 한국 부동산의 근본문제, 자본과 결합한 합리성·이성(理性)이 초래하는 ‘갑을 관계’의 영속화 문제 등을 비롯해 우리 삶을 규정하는 요소나 쟁점에 대한 사유나 담론이 숱하게 깔렸다. 다만 이 책에서의 사유나 담론은 그 독자성이 분명하여, 읽는 사람마다 다양한 판단이나 입장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해서, 누구의 주석이나 해석보다는 독자가 그 문장 자체를 읽고 긍정이든 부정이든 각자 가지는 것이 좋다. 그 사유·담론을 옮기되, 이 책 전부가 사유·담론으로 점한다고 할 정도로 너무 많아 아쉽지만, 그 일부만을 싣는다. 다만, 그 분량을 최대한 줄여도 그 양이 많음에 ‘읽는 이들에게 어떨까!’라는 부담이 남는다.





    책 속으로



    어떤 사회든 국가든 그 구성원들이 ‘공존’에 대한 의식·철학이 얼마나 분명하냐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심각하게 다투는 현실적인 이익의 문제든 보수·진보와 같은 이념에 영향을 받는 문제든, 모두 ‘공존’이라는 최종의 가치가 배제된 상태로는 화해에 이르지 못한다. ‘공존’이라는 최종 가치의 명을 받지 않는 상태에서는, 대립하는 에너지가 경쟁에서의 승리나 자기존재성의 확인에 매몰된다. --- p.7



    2016년 대한민국 촛불혁명은 인류사에 기념비적인 사건이라는 진단들이었지만, 내 관점에는 ‘과연 99%가 구제될 것인가? 나아가 궁극인 ‘공존’의 기초라도 마련될 것인가?’가 모여 있었다. 생활정치라는 담보 없는 상태에서의 촛불혁명임에는 분명했기 때문에, ‘경험이 현재를 정초하는 선험(先驗)이 되지는 못했던 숱한 역사의 함의를 기억할 것이고’라는 등으로 회의가 스멀대고 있었다. 숱한 악마적 현실에 비춰 우려되었던 바가 집권 막 1년 지난 오늘에 보아서는 기우였던 측면이 없지 않지만, 역시나 내 관점이 가졌던 회의는 씻지 못한다. --- p.8



    한나 아렌트가 역사적 사건에서의 특별한 악행을 널리 인간의 모태로써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포착했거나 설정했다면, 이 소설에서 거론되는 ‘널리 폭력’은 모든 분야에 모두의 일상에 내린 어둠이며 지배의 모태이다. 인류가 이뤄야만 하는 마지막 당위인 ‘공존’은 ‘널리 폭력’과 투쟁의 역사 안에서 힘겹게, 많은 경우 후퇴나 반동과 함께 껴안고 뒹굴면서 그 확장을 얻는다. 소설은 ‘99% 을의 삶’을 주목하는데, 그 삶은 결국에는 경제와 함께 정치가 규정하는 큰 손안에 있다. 정치를 생각하는 소설은 여기서 작가 ‘조지 오웰’을 소환한다. --- p.17



    이 대폭발의 근원이 무엇인가? 서열과 남성 중시의 유교문화권이면서도 동시에 적어도 아시아권에서는 상대적으로 정의의 관념을 더 내면화하고 있는 민족성을 가졌다는 점, 삶의 질곡이 임계점이 이르렀을 때는 수차 저항권을 행사했던 역사적 경험을 가진 점, 전자적 기술의 보유와 SNS의 활발한 사회적 기능이 수행되고 있는 점, ‘촛불혁명’의 정신을 따르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불만이 이 ‘미투운동’에 발화되었다고 볼 수 있는 점, 지방선거를 앞둔 시즌인 점, 보수야당이 궤멸한 반면 높은 지지율을 가진 중도진보세력이 집권하고 있는 점, 여성의 사회적 성취와 자신감이 커온 점, 운동의 대의 그 체제에 대해서는 남성도 대체적 동조와 변화의 필요를 인정하고 있는 점… 결국 집적된 사회적 분노들이 폭발성을 가진 국민성과 결부된, 이런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 p.20



    혁명의 시기에는 반동이나 가해자로 지목된 자는 그 삶의 이유를 잃는다. 전체적으로는 진실의 여부와 관계없이도 자신을 변명할 수단이 봉쇄된다. 변명할수록 그의 공간이 축소된다. 이럴 때 책임의 양을 목숨으로 대신해버리는 초과행위의 슬픔도 생산된다. 저 초과행위를 차단하는 힘은 오직 그의 가족만이 가지고 있다. --- p.21



    ‘국가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재벌총수에 대한 형량의 고려’라는 주장을 비아냥거리는 정도에 머무는 상태, 재산에 있어 법인과 그 구성원 개인을 그리 분리하지 못하는 경제관념의 미숙상태, 부당하거나 부정한 돈의 유통에 관련한 이해나 수용의 차이(?개인은 도덕적 관점에 재단되는 반면, 자본가는 돈의 배치 관점에서 수용) 등으로… 자본의 폭력에 대한 두려움과 그 흠모를 그리 크게는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 의식상태임의 반영임에 다름이 아닐 터이다. 돈이 ‘원수’이고 돈이 삶을 규정하는 바이니, 저 프레임은 견고하다. 그러나 ‘공룡 삼성의 지배자도 처벌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경험의 취득, 저 우리의 경험이 어떻게라도 이 나라 역사 발전에 연결될 것은 틀림없음에 주목을 한다. --- p.23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진정성의 전범으로 느껴지는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이 저렇게 말했으면, 나는 웃어버렸을 것이다. 어쨌든 슬픈 일이다. 기회가 평등할 수 없고, 과정이 공정할 수 없고, 결과가 정의로울 수 없는 나라이다. 앞으로도 한참이나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무기불평등이 심각한 탓이지만, 그 이전에 저럴 수 있는 이념이 부재한 나라이다. 굳이 말하자면 ‘공존의 이념’의 현저한 부재이다. 기회의 평등이냐? 결과의 평등이냐? 이것은 어려운 화두이다. --- p.23



    일자리 나누기 정책의 실질적인 실현은 ‘공존의 철학’을 전제로 한다. 저 철학이 이미 그 국가·사회 전체의 토대로 되어 있는 상태에서나 가능하다. ‘공존’이 전제될 때 용인되고, ‘공존’에 균열을 내는 사정을 용납지 않는 이념을 보유한 땅에서 가능하다. ‘북유럽의 모델을 너무 맹종한다. 우리 고유의 것을 개발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라는 소리도 있지만, 특출하게 잘난 민족이나 국가 같은 것은 없다. 모두 어떤 이념이며 무슨 환경이냐의 문제에 종속될 뿐이다. 인류의 역사적 경험으로 성취한 바를 살피는 것이 정합적이다. --- p.26



    인간세계는 운명적으로 이념의 종속물일 수밖에 없다. 하여, 다른 대안들은 아무리 끌어온들 쓸데없는 짓이다. 그렇지만! 단지 이념만으로는 버틸 수 없거나, 분열되거나, 폭정으로도 가버린다. 그렇게 된다. 함께해야 하는 다른 요소는? ‘일정 수준 이상의 지식(교육)과 돈(경제)’이다. 저것들이 함께해야 한다는 전제이다. 사물의 구조와 성격을 읽을 수 있어야 하므로 지식이 필요하고, 이념이 정립에는 합리적 절차를 감당해낼 비용을 요구하므로 경제가 필요한 것이다. --- p.26



    이 나라에서의 ‘4차 산업혁명’은 일자리 문제를 더욱 곤란에 빠뜨릴 것이고, 그들만의 리그로써 ‘누구 좋아라고 저것이었느냐!’라는 곡소리를 보탤 것이라는 우려를 떨쳐내기가 쉽지 않다. 이 나라가 가진 이념의 양태와 정도로는, 새로운 유형의 산업혁명으로 생산될 돈의 폭력을 좇을 사회적 에너지를 말이다. 오늘날 북유럽 국가들이 성장과 분배, 저 두 마리 토끼 모두를 잡은 데에는 그 이유는 뜻밖에 간단하다. 국가·사회 저변에 오래전부터 단단하게 침윤한 사회주의적 기반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p.27



    대한민국은 ‘이념의 불균형’의 힘으로 고도성장을 했고, 동시에 저것으로 인해 그 대가가 ‘1:99의 땅’이 되었다. 모든 가치가 ‘이념의 현저한 불균형’에서 생산되고 저 불균형의 마력에 의해 조율된다. 모든 원인과 결과의 모태다. 이 21세에 이르러서도 그렇다. 보수 쪽으로 너무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99% 을’의 보수성과 진보정당의 약체는 오랜 이념의 불균형이라는 밭에서 계속 생산된 것이다. ---p.28



    주택이든 상가든 임차보증금, 월세, 임차기간 등은 국민 태반의 삶을 규정하는 근본요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론의 이해와 분노의 스펙트럼이 자본의 합리주의이라는 이념이 규정하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것이다. 공존과 관련하여 그 국가·사회를 널리 지배하는 이념이 〈‘공존’은 반드시 성취되어야 하는 상태이며, 개인의 노력을 넘어 그 국가적 인프라와 그 지역의 도시화 등에 의해 생산된 부가가치는 공동의 재산이라는 ‘공존의 개념’〉이 구축될 때, 그때 비로소 삶은 가능성으로 진입한다. 우리는 저 차원이 높은 이념을 거의 ‘전혀!’라고 할 정도로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러니 정부와 시민단체가 강한 추진을 하고 널리 국민이 부당함을 알고 있어도, ‘부당하게 누리는 1% 갑과 질곡의 99% 을이라는 폭력의 상태’를 마치 태초에 조물주가 설계한 운명인 듯이 어쩔 수 없다는 체념으로, 마치 우주의 법칙인 듯이 합리적인 것으로 이해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진보정당들의 제도권 진출이라도 빨리 이뤄지면 그나마 일정 부분의 희망을 품을 것인데, 이 역시 이 나라 국민이 가진 이념의 단순성과 한계로 인해 난망이다. 물론 국민이 가진 이념의 한계는 그 원천에서는 국민 개개인의 탓이 아니다. ---p.30



    ‘돈만이 삶을 담보한다!’라는 신념체계가 우리 모두에게 고착되어 버렸다. 적어도 이 점에서는 보수만이 아니라, 진보 성향의 사람들도 그리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부정의 값은 돈만이 아니라 상식, 의식, 이념까지 결정해버렸다. 사적 이익으로서의 시민의식의 일반화이다. 이런 의식은 전체로서의 돈, 욕망, 사적 유리함을 잃지 않는 한계 내에서만 ‘옳음’을 비롯한 모든 가치를 재단하거나 허용하는 왕국이 된다. ---p.31



    인문적·공적인 정서도 이미 ‘상품화’가 되어버린 현실이다. 순수한 글쟁이 영역에 있는 자들도 존재감의 획득을 향해 온갖 종류의 미디어를 타려고 미쳐 있다. 그 예로 ‘강연’이 있다. 가히 ‘강연전성시대’이다. 공급자도 수요자도 책보다는 강연이 남는 장사다. 책의 인세보다 강연료가 크고, 강연을 위한 수단으로 책을 낸다. 이런저런 짜깁기나 신파로도 ‘작가’가 된다. 뛰어난 독자성·창작성이나 심오한 사유체계는 오히려 시장에서 먹히는 데에 장애가 될 수 있다. 수요자는 인내와 땀을 요구하는 책보다는, 그냥 받아들이기만 하면 그만인 강연을 통해 지성을 얻는다. 그렇게 얻는다는 관념에 학습되어 있다. 이래서 강연시장이 책 시장을 자신의 수단으로 만든다. 진실은 ‘돈 놓고 돈 먹기’와 ‘외피를 통한 교양놀이의 공모’의 실현이다. 그 뜨거웠던 ‘촛불의 시민의식’에도 이미 이런 ‘상품화’가 침입해있다. 따라서 그 정신이 오래 견인되지 못한다. 영화를 본 후에나 촛불의 시민집회를 마친 후에는 ‘스마트폰의 세계’로 회귀한다. 거기까지다. 영화이든 인문적·공적 정서이든, 그것들이 생산하는

    값이 그러하니 일상의 삶에 침윤하지는 못한다 ---p.34



    소득을 주도로 하는 성장드라이브와 최저임금의 인상 그 자체는 옳다. 그러나 저런 것은 혼자서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필연적으로 결부되는 요소들의 상태가 과연 어떠한가를 따져야 한다. 수요가 턱없이 부족할 정도로 넘치는 자영업의 수와 임차물(점포, 사무실, 창고 등)의 과도한 월세의 부담이 개선되어야 한다. ---p.36



    ‘인간은 세상을 살 만한가, 행복한가? 미래에는 희망을 가져도 좋은가?’라는 것은, 결국에는 ‘99% 을의 의식이 무엇인가?’라는 상태성에서 물어야 한다. ‘99% 을’이 가진 의식의 방향, 숙성도, 견고성, 지속성을 물어야 한다. 집권세력이 아무리 빼어나도 전체로써 국민의 의식이 아니면, 결국 어렵다. ‘99% 을’의 의식은 환경과의 함수관계로써 지체·후퇴를 함께하며 진화한다. 역사는 절대치로서의 물리적 시간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역사의 시간은 그 시대 ‘인간의 의지’가 무엇이냐에 의해 조율되고, 인간의지의 산물이다. 인간의 의지는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진실과 같이 ‘지식’에 의해 빛을 얻는다. 지식이 발견과 각성의 기반이다. ---p.37



    2018년 6월 선거의 결과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규정한다. 진보세력(정의당, 녹색당, 민중당, 노동당 등)은 발을 붙일 수 없는 땅이라는 진실을 다시 확인해줬다. 절망이다. 진보세력은 그 많은 대표(광역단체장, 기초단체장, 보궐 국회의원, 교육감) 하나도 갖지 못했다. 지방의회 의원의 진출도 형편없다. 집권세력은 촛불의 정신과 직접 연결되는 진보세력과의 연정을 하지 않았으면서도, 촛불의 화력을 받은 선거에서 모든 수혜를 가져갔다. 대구·경북을 제외한 전국이 민주당의 그물에 포섭되었다. 촛불의 세(勢)가 적폐와 구태의 지움을 넘어 평등과 진보를 향한 걸음이었으므로, 그렇다면 진보세력에 하다못해 10% 정도의 자리는 주어짐이 이치적 귀결이었는데도, 그랬다. 수구·보수의 거대정당인 한나라당이 역사적 책임으로 침몰한 자리를 왜 중도 집권당이 전부를 가져야만 하는가? --- p.42



    정치권 전체가 실질적인 진보의 방향으로 성큼 이동을, 즉 혁명적 변화로 점진적 출발이나 도약을 하게 된다. 그래서 언젠가는 현재의 민주당 정도의 색채가 보수정당으로, 현재의 진보정당들이 중도 내지 온건진보로 정착하게 된다. 그때야 비로소 자유와 평등, 성장과 복지 등 양가치의 균형에 의해 사람 사는 세상의 문이 열린다. ---p.46



    또 단순히 말한다. 한나라당 다수 지배는 99%의 비극, 민주당 다수 지배는 89%의 비극이다. 그 세력 중 누구의 뜻이나 의지와는 관련이 없이 민주당도 필연적으로 89%를 분리하거나 배제하는 모형이며, 저 무서운 진실을 국민의 99%가 모르는 비극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학력과 가장 우수한 정보 소통의 수단을 가진 나라이지만, 특이하거나 기이한 것이 아니다. 구체적 시공간의 독자적 진실이다. ---p.47



    북한의 통일의지는 절대세습권력의 내적·외적 보전을 전제로 한다. 이 전제는 북한민중의 반란을 완전히는 피할 길이 없다는 내적 불가능성과, 어느 시점에는 절대세습을 거부해야만 하는 남한의 입장이라는 외적 불가능성에 충돌한다. 하나의 가능성은 북한의 세습권력이 북한민중의 반란 가능성을 착오하는 것인데, 그러기에는 저 세습의 권력이 영민하다. ---p.49



    난해한 문제를 쉽거나 간명하게 푸는 길은 없다. 조물주가 어려운 것은 더 많은 인내와 더 긴 시간을 바치도록, 사물과 세계가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 놓았다. 무엇보다 기억해야 하는 것은 ‘함께 해결’해야 하는 사이나 사정의 경우에는 만남 자체가 없는 상태가 가장 나쁜 결과를 만든다는 진실이다. 만남이 유지되고 있으면 어쨌든 전체적으로 0에서 플러스로 가게 되지만, 만남이 없으면 0에서 마이너스 값으로 간다. 만남의 개별 단위에서는 불만이나 후퇴인 경우도 있지만, 만남의 계속은 전체로써 플러스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p.52



    김광석은 그와 같은 또래의 세대를 넘어, 그리고 그시대를 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각별한 사람으로 살아 있다. 떠난 지 오래된 그가 그렇게 유별나게도 소환되는 바에는 무슨 까닭인가? 우리가 그로부터 무엇을 수여받기 때문인가?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물론 음악적 재능에다가 그의 목소리가 가진 짙은 호소력과 울림이 그 기본으로 가진다. 그의 노래에는 그외에도 뭔가 색다른 바로써 우리의 삶 자체가 담겨 있다. 대중가요가 대개인 단지 청춘의 애증을 넘어서고 있다. 가사가 그런 경우에도, 삶 자체의 본질적 잉여로써 그리움이나 비애를 품고 있다. ---p.56



    ‘권력을 가진 자를 통한 자리 등 현실적 이익을 얻는다는 욕망으로 인해 관계를 맺은 것이 아니냐!’라는 식의 네티즌 말들도 있다. 저것을 어떻게 볼 것이냐? 고율의 이자 때문에 돈을 넘긴 피해자의 불순한 욕망이 개입했다고 해서, 사기꾼이 무죄가 되지 않는 것과는 그 성격이 다른가? ‘성적 자기결정’이 ‘삶의 사회적 결정인자들(자리나 사업의 수여받음이나 그 계속이나 승진 등, 기타 경제적이거나 권력적 취득의 기회 등)’ 앞에서 흔들렸을 때, 법은 저 흔들림에 대하여 어떤 규범적 판단을 해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p.63



    우리의 법은 법 규정이나 법률행위에 부지나 착오에 관해서 위와 규정하고 있다. 언뜻 쉬운 말 같지만, 결코 간단하지 않고 쉽지 않은 영역이다. 모르거나 착오를 한 경우 법으로는 저렇게 구제될 수 있다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거의 먹히지 않는다. ‘중요부분에 관한 착오’로서 인정하는 데에 무척이나 인색하다. 사실이나 법을 몰랐다고 하면 ‘모두들 법을 몰랐다고 주장하면 법의 권위는 어쩐다는 거야!’라고 질책하듯, ‘정당한 이유’를 인정하는 일은 거의 없다. ---p.72



    당연히 사회 있는 곳에 법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 인류의 법은 언제부터, 어떻게 가동되었는가? 인류는 인간의 행위에 관한 판단을 저 아늑한 날로부터 기나긴 시간 신화, 종교, 관습, 도덕률에 의존해 왔다. 그것도 권리가 아닌 의무가 중심이었다. 근대 이후 체계를 가진 법이 등장했지만, 실상은 여전히 관습·도덕·종교에 의해 다스려졌다. 법이 실제로 반영된 바를 엄밀히 보면, 20세기 후반부터라는 정도다. 21세기가 가까워질 시대에 이르러 경제의 촉진이나 규율, 지적재산권, 환경, 자본, 근로, 교육 등등… 세분화된 수많은 법률이 양산되었다. ---p.73



    ‘정의’에 관한 따짐이 먹히지 않는 영역이 전쟁이다. 전쟁은 물리적 유효성의 영역이므로, 행위가치의 세계인 법적 정당성을 따지는 것도 물론 의미가 없다. 전쟁은 삶 자체를 제거하는 절대 악이기 때문에, 평시의 부정의는 전쟁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한편으로 물리적 전쟁이 아니라 정의의 관념에 따른 전쟁의 측면에서 보면, ‘전쟁을 치르더라도 기꺼이 정의를 세워라!’라는 당위가 소멸한 시대다. ---p.76



    대체 누가 국회의원이 되는가! 첫째로, 학벌로는 ‘SKY’는 기본이고 유학파도 수두룩하다. 게다가 빌어먹을! 판사·검사·변호사 출신은 왜 그렇게도 많은가. 기능적 법률테크놀로지들에게서 ‘국민주권’의 기대는 난망이다. 둘째로, 그들이 가진 재산은 어떤가? 공직자윤리법에 의해 공개된 2017년 국회의원의 평균재산은 37억 원이다. 그것도 공시 가격이 아닌 실제 가격으로 따지거나 신고하지 않았거나 거부한 것까지 보태면, 실제로는 50억 원을 훌쩍 넘을 터이다. 물론 유난히 많은 일부 의원 탓에 평균이 올라간 측면은 있지만, 그 부분을 빼더라도 그 결과는 ‘99% 서민’의 입장에서는 말을 잃는다. 국회의원뿐만이 아니라 다른 고위공직자들도 20억, 30억 따위의 수준이 수두룩하다. 2018년 현재 ‘농민’ 출신의 국회의원은 딱 한 명이 있는데, 그것도 어렵사리 된 비례대표일 정도다. 이 나라의 전체 표심의 지형도가 여전히 스펙을 흠모하는 의식·무의식으로 가득 차 있고, 앞으로 오랜 세월 그리 벗어나기도 어려울 것 같다. ---p.79



    학벌과 재력은 ‘국민주권’에 친하기 어렵다. 우선, 인간은 ‘자신이 가진 존재조건’으로부터 좀체 자유로울 수 없다. ‘99% 을’은 먼저 저 무섭고도 싸늘한 진실을 아프게 기억해야 한다. ‘1% 갑’이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세워도, 실제로는 서민의 입장을 대변하기 어렵다. 그들은 실제는 모른다. 설령 알더라도 자신의 존재성을 부정해야 하는 모순으로 인해, ‘99% 을’의 삶을 해결하는 전장으로 몸을 던지지는 못한다. 큰 부자였던 역사적 인물들(?철학자이자 사회운동가 프리드리히 엥겔스,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등)과 같은 특별한 인격체는 나타나기도 어렵지만, 더욱이 가치가 분화되고 복잡한 이 21세기에는 영웅·철인이 할 수 있는 정치가 별로 없다. 국회의원이라는 ‘갑 중의 갑’은 표만 주면 ‘이 한 몸바쳐 국민주권을 실현하겠다!’라고 끊임없는 공약(空約)을 쏟아 놓는다. 빼어났던 일부 인사조차 국회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내적·외적 자장에 의해 결국 무디어진다. ---p.79



    ‘영웅을 기다리는 정치 환경’이란 집권권력의 내치·외치에서의 무능이나 국민에 대한 행패로부터 가진 실망이나 환멸, 인간의 본질에 하나로 보아야 할 뿐 합리적 이유가 없는 권태나 변덕, 특히 경제영역에서의 삶의 어려움과 미래의 불안 등 숱한 이유로부터 생산된다. 우리 정치사에 넘칠 정도였고 앞으로도 얼마든지 나타날 것이다. 이것은 오랜 세월 검증의 과정이 없이도 정치의 중요담지자가 나올 수 있다는 것으로, 정치의 본질에 하나라고 하고서는 그냥 지나가기에는 그 국가사회가 갖게 되는 불이익이 너무 크다. ---p.82



    부모가 자식에게 부양료를 내놓으라는 재판을 거는 시대이다. 노부모와 자식이 함께 살지 않는 세태인 점, 노후 수입은 없는 반면 삶의 종료까지 남은 시간이 길게 드리워진 점, 자식들도 살기가 팍팍한 현실인 점, 부모와 자식 사이의 인적 점도(粘度)가 급속히 엷어진 시대인 점, 그리고 그 무엇보다 사회안전망이 턱없이 부족한 나라인 점 등으로 인해 노인의 생계문제는 심각한 현실로 치닫고 있다.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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